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윈스턴 처칠/생애 (문단 편집) ==== [[미국]] ==== 당시 [[미국 대통령]]이었던 [[린든 B. 존슨]] 대통령이 이 일로 두고두고 비판받았다. 장례식에 직접 오지 않고 당시 주영대사에게 조문 사절을 맡긴 것이었다. 원래는 국무장관이었던 [[딘 러스크]]와 대법원장이었던 [[얼 워렌]]을 파견하려 했는데 러스크가 몸이 아프다며 거부하는 바람에 영국 주재 미국 대사가 대신 조문사절이 된 것이다. 동맹으로서 영미 양국의 특수관계, 처칠의 역사적인 위상, 그리고 당시 타국에서 파견한 조문 사절[* 대부분 자국의 국가원수나 내각 수반]들의 위상을 고려하면, 상당히 처지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. 조문사절의 지위를 중시하는 [[영국]]은 장례식장에서 [[미국]] 대표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고, 당연히 미국 시청자들은 "우리 위대한 미국의 대표는 어디에 있는가?"라고 외쳤으며 실상을 안 후에는 격노했다. 존슨 대통령은 "[[감기]]에 걸려서 가지 못했다."라며 변명했지만, 사람들은 "처칠이라면 감기 정도로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을 거다!"라고 응수했다.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교롭게 린든 B. 존슨 대통령은 5년 임기에도 불구하고 [[드와이트 D. 아이젠하워|아이젠하워]] 이래 '''[[엘리자베스 2세]] 여왕을 만나지 못한 유일한 [[미국 대통령]]'''이 되었다.[* 사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낀다. 우선 존슨 대통령의 임기 초반은 전임 대통령 [[존 F. 케네디]]의 암살로 인한 수습과 선거 준비로 엄청 바빴고, 그 기간 앞뒤로는 [[엘리자베스 2세]] 여왕의 [[임신]] 등이 있어 여왕 스스로도 [[1957년]]부터 무려 [[1976년]]까지 [[미국]]을 방문하지 못했다. [[캐나다]]는 2차례 방문했으나 이번엔 존슨 대통령이 시간이 없었다. [[http://www.dailyacid.com/2009/12/lyndon-b-johnson-never-met-queen.html|#]]] 이에 존슨 대통령의 또다른 변명은 더욱 가관이었는데, 평소 [[프랭클린 D. 루스벨트]]를 존경하던 존슨은 '''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례식 때 처칠이 조문하러 오지 않았으므로 자신도 처칠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'''고 변명했다. 그런데 루스벨트 대통령의 기일은 1945년 4월 12일, 장례식은 [[https://www.whitehousehistory.org/franklin-d-roosevelt-funeral|1945년 4월 14일]]이다. 이 시기는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끝나기는커녕 '''아직 서부전선조차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던''' 시점이므로[* 다들 알다시피 [[승리의 날|V-E Day]]는 5월 8일이다. 바다는 U보트가 여전히 출몰하고 있었고, 항공기편도 마땅치 않았다.] 처칠이 [[대서양]] 너머 [[워싱턴 D.C.]]에서 거행된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. 이런 씨도 안 먹히고 되도 않는 변명 때문에 존슨 대통령은 더더욱 비난을 받았다. 게다가 더 기가 막힌 사실이 무엇인가 하면, 바로 처칠의 장례식에 '''[[드와이트 D. 아이젠하워]] 전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'''했다는 것이다. 당시 전직 대통령인 아이젠하워가 뭔가 공식적인 직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[* 후술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'''현역 [[미합중국 육군]] 원수''' 계급을 가지고 있었다. 원수 계급은 계급정년이 없어 종신으로,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직 수행 당시에는 예비역으로 전환되었다가 퇴임 후 다시 복귀하는 방식으로 계급을 유지했다.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원수 계급은 [[국방부(미국)|미 국방부]] 산하 육군부 장관(차관급)에 대응하므로 어쨌건 현직 차관급 인사이기는 했다.] 그렇다 해도 '''전직 [[미국 대통령]], 육군 [[원수(계급)|5성 장군]], [[전승훈장]] 수훈'''이라는 으리으리한 이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닌데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은 연합국의 지도자, 아이젠하워는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었으니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처칠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 자체가 이미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. 그러니까 존슨 대통령 본인이 정 가기 싫었으면 그냥 처음부터 아이젠하워에게 대리인 및 [[미국]] 대표를 맡기거나 [[휴버트 험프리]] [[미국 부통령]]을 조문 사절 대표로 보내면 아무 문제 없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였다. 국가원수가 가지 않더라도, 부통령 정도의 제2인자라면 대통령을 대신해 가도 국제 관례상 큰 문제가 없으며,[* 한국도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가 참석했다.] 상식적으로 존슨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. 후대의 일반인들이 봐도 뻔히 보이는 사실을 명색이 [[미국 대통령]]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. 그런데도 결국 존슨 대통령은 뻔히 보이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악수를 둬서 안 먹어도 될 욕을 사서 먹은 것이 되는데, 그가 대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. [[넷플릭스]]의 [[더 크라운]]에서 존슨 대통령의 감기는 사실 핑계였다는 설을 제시한다. 영국의 [[베트남전]] 참전 거부에 불만을 가진 존슨이 의도적으로 참석을 거부했다는 것이다. [각주] 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윈스턴 처칠, version=1692)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